눈에 띄는 건 빨간 장미, 마음에 남는 건 담장의 기억
5월의 공기를 가르며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민 장미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난히 또렷한 붉은빛의 장미는 햇살 아래서 반짝이며 계절의 중심이 되었음을 조용히 알린다.
철쭉이 물러가고 라일락의 향기가 옅어질 즈음, 장미는 마치 자신이 이 계절의 주인인 양 도심의 골목골목, 아파트 담벼락 아래에서 피어난다.
장미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꽃이 아니다.
그 안에는 계절의 속삭임과 함께, 사람마다 다른 기억이 녹아 있다. 어린 시절, 집 앞 담벼락을 따라 흐드러지게 피었던 장미 덩굴이 생각난다.
철마다 어머니가 가지를 다듬고 장미 송이를 유리병에 꽂아 거실에 두면, 집 안 가득 장미향이 퍼지곤 했다.
그 향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릴 땐 몰랐던 소소한 정성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새삼 떠오른다.
5월은 ‘장미의 달’이라고 불릴 만큼 전국 곳곳에서 장미축제가 열리고, 거리의 풍경도 점차 장미빛으로 물든다.
진한 붉은 장미는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고, 연분홍빛 장미는 수줍은 고백과도 같다.
흰 장미는 순수함과 영원을 말해주고, 노란 장미는 우정을 품고 있다.
이처럼 색깔마다 꽃말이 달라 장미는 마음을 대신 전하기에도 좋은 꽃이다.
그래서일까, 졸업식이나 기념일에는 늘 장미꽃이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장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장미는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힘이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만들며, 향기를 따라 잠깐이라도 여유를 찾게 만든다.
그저 지나치기엔 너무 눈부신, 계절이 전하는 작은 선물 같다.
요즘처럼 계절이 빠르게 지나가는 듯한 날들 속에서, 장미는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게 해준다.
매일 같은 길도 장미꽃 하나로 새롭게 느껴지고, 담장 아래서 피어난 작은 꽃송이 하나가 그날의 기분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눈에 띄는 건 단연 빨간 장미이지만, 마음속에 오래 남는 건 오래된 담장과 그 위를 타고 오르던 장미의 모습이다.
5월, 장미가 말을 건넨다.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그 속삭임에 귀 기울이며, 오늘도 장미꽃 곁에서 천천히 하루를 걸어본다.